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서파관 사건 (문단 편집) === 2월 제강 === 마오쩌둥은 상하이에서 항저우로 출발해 뤼산, 광저우, 난닝을 여행한 후 창사를 거쳐 [[우한시]]로 갔다. 1966년 2월 펑전은 캉성, 루딩이, 신화사 사장 오인소조를 이끌고 우한시에서 휴식 중이던 마오쩌둥을 찾았다. 이들은 2월 3일 작성한 <당면 학술 토론에 대한 문화혁명 오인소조의 보고 제강>, 이른바 2월 제강을 마오쩌둥에게 제출했다. 마오쩌둥이 펑전에게 물었다. >"정말로 우한이 반당, 반사회주의요?" 이에 캉성이 먼저 대답했다. >"반당, 반사회주의적인 독초입니다." 마오쩌둥이 "물론 누구든 상반된 관점이 있다면 당연히 표현해야겠지."라고 말하자 펑전은 우한을 옹호하고 나섰다. >"우리는 그 연극에서 제기된 학술 주제를 토론할 때 마땅히 '백화제방, 백가쟁명'이라는 주석의 지시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." 이에 마오쩌둥은 당신들이 일을 끝냈으니 "나는 더 이상 볼 필요가 없겠군. 여러분이 알아서 할 일이오."라고 말하면서 펑전을 안심시켰다. 펑전은 2월 제강에 대해 주석이 비준했다고 여기고 가벼운 마음으로 우한의 고서점가에서 쇼핑을 즐기는 등 휴식을 취했지만 마오쩌둥은 무시무시한 철퇴를 준비하고 있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